급진적이고 강력한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던 북인계열을 몰락시킨 인조반정 이후 정권다툼은 남인과 서인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에서 사계 김장생을 거쳐 내려오는 서인의 정통 학맥을 이어온 인물로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암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을
士林派)의 영수가 되었다. 이때는 사화 직후라 사람들은 그가 공부에 독실함을 보고 ꡐ광인(狂人)ꡑ이라거나 혹은 ꡐ화태(禍胎)ꡑ라 하였다. 친구들과도 자주 교류가 끊겼으나 그는 전혀 개의하지 않고 학업에만 전념하였다 한다. 한편, 평소에도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언행도 성현의 가
1. 사림[士林]이란
사림[士林] = 유교를 닦는 선비 집단
<<고려사>>의 유학을 닦은 관료에 대한 표현
유사(儒士), 유신(儒臣), 유학자(儒學者) 과 같은 표현 사용.
->麗末 ,신유학(新儒學)의 도입 이후
사대부(士大夫), 사인(士人), 사류(士類), 사족(士族)
※ 신유학이 수용되면서 고려의 문사들도 사
훈구(勳舊)와 사림(士林)의 대립 구도는 성종에서 연산군, 그리고 중종에 이르는 시기에 집중 부각된다. 그리고 명종 대를 마지막으로 훈구는 사라지고 사림이 주도권을 잡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훈구세력들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세조(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기점으로 세조를 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