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묵죽화가로 손꼽힌다. 강세황(姜世晃)에게서 묵죽을 배웠던 그는 조선 후기의 남종화(南宗畵)의 꽃을 피웠으며, 그의 묵죽화풍은 아들 명준(命準)ㆍ명연(命衍)을 비롯하여 여러 화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글씨는 동기창체를 따랐으며 조선시대에 이 서체가 유행하는 데 계도적 구실을 하였다.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18세기 말 이후로는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아 강세황(姜世晃) ․김수철(金秀哲) 등이 새로운 화풍을 개발하였고, 특히 기존의 초상화와는 달리 전신을 세심하게 묘사하는 특징을 보였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적이고 생동력있는 화풍이 완성되게 되었다.
Ⅰ. 단원 김홍도의 생애
1745년(영조21년) 한양에서 아버지 김석무(錫武)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외가는 대대로 도화서 화원을 배출한 집안이었기에 외조부와 외숙에게 그림을 배웠다. 어려서는 경기도 안산에 칩거 중이던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이며 이론가인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문하에서 그림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능(士能)이며, 호는 처음엔 서호(西湖)라 했으나 30대 중반에 단원(檀園)이라 하고, 고면거사(高眠居士)를 자처했으며, 말년에 들어서는 단구(丹邱)와 농사옹(農社翁)이라는 호를 즐겨 썼다.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
Ⅰ. 서 론
필자도 근대 미술을 감상을 자주 하는 편이다. 어떤 미술작품은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쉽게 이해되지만 난해한 예술작품은 감상해도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다. 도저히 이해가 안되 그냥 넘어가지만 그 작품을 만든 작가가 어떤 의도로 미술작품을 창작했는지 알고 싶기도 한다.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