威逼主義)는 몹시 미운 것이지만 의술, 구리, 공예, 문학, 학제, 군사, 법률 등은 매우 칭찬할 만한 것들이다”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여기에 공예라는 말이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다. 또한 1년 뒤인 고종19년(1882) 정부의 논의 내용을 담은 일성록(日省綠)에 공예라는 용어가 언급되고 있다.
“공예의 교묘
詩曰: 逢人且說三分話 未可十分盡吐眞.
시왈: 봉인차설삼분화 미가십분진토진
全抛一片心의 원문은 十分盡吐眞이다.
시는 다음과 같다. 사람을 만나면 단지 30%만 말하고 100%다 진실을 토해서는 안된다.
不虎生三個口 只恐人情兩樣心
불호생삼개구 지공인정양양심
호랑이가 안왔는데 3명이
却說謝晦聞子弟被誅, 禁不住一陣心酸, 頓時暈倒座上。
각설사회문자제피주 금부주일진심산 돈시혼도좌상
心酸 [x?n su?n] ① 마음이 쓰리다 ② 슬프다 ③ 비통하다
각설하고 사회는 자제들이 주벌당함을 듣고 한바탕 비통함을 금지하지 못하고 갑자기 좌석에서 혼미해 쓰러졌다.
左右急忙施救, 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