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 건국
669년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의 땅을 평양에 안동 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여 지배하였다. 고구려 유민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였고, 이에 당나라는 고구려 유민 2만 8천여 가호를 중국 땅으로
安東都護府)를 설치하자, 그는 검교안동도호(檢校安東都護)로 취임했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계림도행군총관(鷄林道行軍總管)으로 신라를 침입했으며, 675년 신라의 천성(泉城)을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다시 침략했으나 소부리(所夫里)의 기벌포(伎伐浦)에서 패했다. 681년 과주자사(瓜州刺史)·
安東都護府를 두었다. 명칭에서도 보이는 바처럼 고구려는 물론 백제 및 신라 땅에 설치된 도독부를 총관, 한반도를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신라의 대당전쟁이 시작된다. 백제 땅을 수복하기 위해 고구려의 왕족 안승安勝(보장왕寶藏王의 서자)을 고구려왕으로 삼고(문무왕文武
23) 영남지방의 행정 관청인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설치되었다. 987년(성종 6) 동경(東京)으로 바꾸고, 유수사(留守使)를 두었으며 1012년(현종 3)에 다시 경주가 되었다. 한동안 경주부에 설치된 경상좌도(慶尙左道)의 감영(監營)이 1601년(선조 34)에 대구로 이동된 후 경주의 지위는 약화되었다.
安東府)로 하였다.
명종 27년(1197년)에 남적(南賊) 김삼(金三) 효심(孝心) 등이 주군(州郡)을 겁탈 노략하니 차사(差使)를 보내어 평정하였는데 부(府)가 공이 있다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고, 신종 7년(1204년) 동경(東京:경주)의 야별초 (夜別抄) 패좌(悖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