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이고 강력한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던 북인계열을 몰락시킨 인조반정 이후 정권다툼은 남인과 서인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에서 사계 김장생을 거쳐 내려오는 서인의 정통 학맥을 이어온 인물로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암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을
宋時烈이 유배 및 사사되고 인현왕후의 폐출 사건이 일어나는 등 다사다난한 현실을 목도하고, 스물넷에 과거 공부를 시작했으나 제대로 절의를 세우지 못할 경우 선조에 누가 될 것을 염려하여 단념하고 宦路로 나가지 않을 것을 결정했다. 이후 동문수학한 문인들, 기호사림파 선배들, 여항인들 등
고전시가의 이해 발표
목차
시조
한호(韓濩) 집方席 내지 마라~
이항복 鐵嶺 노픈 峰에~
인평대군(麟坪大君) 바람에 휘엿노라~
윤선도(尹善道) 만흥, 오우가, 어부사시사
송시열(宋時烈) 靑山도 절로절로~
가사
작자 미상 우부가(愚夫歌)
한호(韓濩), 집方席 내지 마라~
작품 해설
작자 : 한호(韓濩, 1543-1605)
宋時烈(송시열)
:; 사계와 우암의 생애와 업적.
1) 김장생의 생애와 업적
김장생(金長生)의 고향은 광산, 자는 희원(希元), 호는 사계(沙溪)이다. 김장생은 1548년(명종 3년)황강 김계휘의 장자로 한성에서 태어나 1631년(인조 9년) 연산향사에서 84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김장생은 예학 발전에 있어서 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