宴樂)으로 구성된 궁중 무악, 그리고 귀족 계층의 개인 창작곡의 셋으로 분류하여 고려 속요의 발생을 논했으며, 김학성은 지방 민요적 성격의 노래가 확대, 전승을 거쳐 최종적으로 궁중악으로 수용되는 과정을 제시하며 현전하는 속요의 변개 양상을 설명하였다. 정상균은 기녀들에 의한 창기의 노래
宴樂)이기에 잔치의 흥을 돋우는 기능을 위해 향가와 같은 짧은 형식보다는 일정한 리듬을 반목할 수 있는 첩연의 가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과정곡>, <사모곡>, <이상곡> 등은 여러 연이나 장으로 발달하지 않고 한 연으로 이루어진 단연체 작품이다.
둘째로는 여음을 들 수 있다. 여음에 대한 명칭
宴樂)을 즐겨 오잠(吳潛), 김원상(金元祥), 석천보(石天輔), 석천경(石天卿) 등에게 자주 노래를 짓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쌍화점>도 그들의 작품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쌍화점>은 6단계의 구성 형식이 네 번 되풀이 되고 있다.
(1) A에 B하러 가고신댄
(2) C가 내 손모글 주여이다.
(3) 이 말싸미
宴樂(연악)에 탐닉했다. 그 결과 왕의 정치개혁을 지지하던 측근의 충신들까지도 하나씩 둘씩 그의 곁을 떠나갔다. 심한 고독 속에서 경덕왕은 재위 24년 6월 세상을 떠났다. 경덕왕의 뒤를 이어 8살난 태자가 등극하였데, 바로 혜공왕이다. 이에 모후가 섭정했지만 선왕 때부터
연주된 宴樂(잔치악)까지를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는 경우이고, 둘째는 궁중에서 연주된 속악의 가사만을 대상으로 보는 경우인데 《고려사악지》에 실린 민요적인 노래를 제외하고 《악학궤범》이나 《악장가사》에 실린 노래와 《시용향악보》의 일부분만을 동일한 장르로 보는 경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