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北派)를 몰아내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다. 선조의 적자(嫡子)이며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그의 생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친정아버지 김제남(金悌男)이 주도하여 왕으로 옹립하려 하는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허위자백을 구실로 김제남을 죽이고, 당시 영의정이던 유영경(柳永慶
17세기는 양반지배체제가 확립되던 시기이다. 사림정치의 개막으로 중앙에 진출하여 권력을 소유하게 된 신대사족(臣大士族)과 정계진출에 실패하여 겨우 지위만 유지하는 한미사족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사족층 내부에서도 유력사족과 그렇지 못한 하층사족 · 이향사족은 배타적 관계에 놓여있었다
Ⅰ. 들어가며
북한의 절대권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 와병설이 북한을 공부하는 필자나 학계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는 일국 내부수준의 차원을 넘어서 독재국가의 특성상 독재자의 교체는 매우 급격한 정책의 전환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경우 일반 독
Ⅰ. 덕수궁 약사
현재의 덕수궁은 궁궐의 모습을 갖추기 이전에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과 창덕궁이 불타버려, 대신에 이 저택이 환도한 선조의 행궁(임금이 임시 거처하는 곳)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 후 점차 확장함으로써 비로소 궁궐의 기능을 다 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