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益鉉)의 이른바 ‘오불가소(五不可疏)’인「지부복궐척화의소(지부복궐척화의소)」를 들 수 있다. 상소의 주된 내용은 화이관을 바탕으로 서양을 금수시한다거나 서양의 상품을 사치품으로 본 것 등 이전의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 척사위정론은 일본과의 개국 통상과 관련하여
崔益鉉)의 이른바 ‘오불가소(五不可疏)’인「지부복궐척화의소(지부복궐척화의소)」를 들 수 있다. 상소의 주된 내용은 화이관을 바탕으로 서양을 금수시한다거나 서양의 상품을 사치품으로 본 것 등 이전의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 척사위정론은 일본과의 개국 통상과 관련하여
崔益鉉)의 이른바 ‘오불가소(五不可疏)’인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를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주장은 이전과 다르게 일본과의 개국 통상 때문에 제기된 것이기 때문에 척사의 주된 대상도 일본일 수밖에 없었다. 과거 일본이 교린(交隣)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서양과 똑같다는
주장하였다. 李離和, 「韓末 儒生層의 現實 認識과 義兵鬪爭-崔益鉉의 思想과 政治活動을 中心으로」, 『國史館論叢』15집, 1990, 2쪽.
이러한 이의제기는 그들이 과연 척사론의 철저한 고수라는 경직된 태도로 일관했는지 아니면 근대지향적으로 퇴색ㆍ변모했는지를 다시 짚어볼 필요를 발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