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의 생존 연대에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명기’, ‘신선의 딸’이라는 이름으로 일세를 풍미했건만 이렇다 할 사적 하나 없이 가버린 것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어우야담(於于野談)」․「송도기이(松都記異)」․「식소록(識小錄)」․「숭양기구전(崧
* 유학이란?
조선시대를 이끌어온 것은 유학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리학인 것이다. 유학은 2500년 전 중국의 노나라에서 출생한 공자에 의하여 그 이전에 있었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역사 등을 종합 정리한 것으로서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상이
徐敬德)·황진이(黃眞伊)를 일컫는 말입니다.
서경덕(徐敬德)
본관은 당성(唐城), 자(字)는 가구(可久), 호(號)는 복재(復齋)이다. 송도(松都, 개성의 옛 이름) 화담(花潭) 부근에 서재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여 화담이라는 별호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시호(諡號)는 문강(文康)입니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
徐敬德)등이 등장하며, 명종 대에는 이언적(李彦迪) 이황 기대승(奇大升)등 100여명에 이르는 학자들이 학문 활동을 통하여 연구 업적을 남기고 있다. 이 시기에 『주자대전』이 수입되어 성리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황의 『주자서절요』와 기대승의 『주자문록』은 주자학에
기철학의 수용과 발전
1.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전래된 것은 고려말엽의 일로, 안향(安珦)에 의해서 처음으로 이 땅에 소개되었고 그의 문인 백이정( article_1 白正) ·권보(權溥) ·우탁(禹倬) 등에 의하여 비로소 수용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성리학은 그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