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서명응(徐命膺)ㆍ채제공(蔡濟恭)ㆍ서호수(徐浩修)ㆍ신경준(申景濬) 등이 주도해, 반년여 만에 상위(象緯)ㆍ여지(輿地)ㆍ예(禮)ㆍ악(樂)ㆍ병(兵)ㆍ형(刑)ㆍ전부(田賦)ㆍ시적(市)ㆍ선거(選擧)ㆍ재용(財用)ㆍ호구(戶口)ㆍ학교(學校)ㆍ직관(職官) 등 총 13고 100권 40책으로 완성되어 1770년 8월에 인쇄.
徐浩修(1736~1799)가 그의 아버지다. 영의정을 지낸 徐命善(1728~1791, 서명응의 친동생)이 작은할아버지고, 이조참판과 경기관찰사를 지낸 徐瀅修(1749~1824, 서명응의 둘째 아들)가 그의 叔父였다. 명문가의 총명한 젊은이 서유구와 피를 나누고 그의 곁에서 그의 성장을 돕던 이들은 당대 최고의 敎授陣이기
Ⅰ. 개요
참된 선비로서 존경을 받은 조선조의 선비들이 관직에 대하여 취한 태도에는 상당한 개인차가 있었다. 황희와 조광조가 그랬듯이, 학문의 길에서 업적을 남기는 일보다도 국가의 현실을 바로잡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적극적 의욕을 가지고 관직에 임한 선비들도 있었다. 과거와
Ⅰ. 개요
우리 토종능금에 대한 최초의 흔적은 통일신라 때의 구전된 노래인 처용가(879)에서나마 겨우 그 편린을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노래의 “머자․외야자․녹이 여”와 같은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머자’라는 과일은 능금의 일종인 ‘멋’, 즉 내를 지칭하는 것
- 감상문 -
제목부터 상당한 임팩트가 있어 이 덕에 사게 된 독자들도 적지않을 듯 하다. 정상 궤도에서 살짝 비켜난 편집광적 기질 없이 대체 어느 누가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을까. 이런 선망을 품고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미쳐야 미친다"라는 타이틀에 혹한 나같은 선정적 호기심의 독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