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백제의 무령왕릉
1. 무령왕릉
1971년 7월 공주의 송산리에서 발견된 무령왕릉에서는 모두 108종류 1,90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유물이 왕과 왕비임을 알려주는 문자가 새겨진 소위 지석 2장이다.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무덤 가운데 최초로 주인과 매장 연도를 정확히
王)의 부자도 비슷한 형식으로 중조되었다. 이처럼 왕이 거듭하여 즉위하는 중조의 현상이 여러 번 나타난 것은 원이 고려왕의 즉위와 퇴위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고 그것을 마음대로 행사한 때문이었으며, 그 결과 고려왕의 권위(權威)는 크게 실추되었다. 閔賢九, 1998, 「政治家로서의 恭愍王A
恭愍王 원년 成均館 ․ 十二徒와 더불어 학당시설의 복구를 촉구하는 왕명이 내리고 있고, 또 동왕 6년에는 “命修中外學校”란 왕명을 내리고 있는데서 찾아볼 수 있다.
恭愍王은 고려후기에 교육중흥을 주도하였던 왕으로서, 그의 노력으로 학교교육은 크게 활성화 되었으며, 아울러 학당교육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