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최한기(崔漢綺)의 사승(師承)관계의 단절과 연속
최한기사상을 조선사상사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규정지을 때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 사상의 단절적 측면이다. 이 단절적 측면은 그의 사승관계에서 더욱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사승관계의 단절이 곧 그의 사상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
최한기의 생애
혜강 최한기(惠岡崔漢綺:1803~1877)는 실학사상이 개화사상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살았다. 서얼 출신인 이규경과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와 사귀었다는 사실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최한기의 15대조상은 세조 때에 영의정을 지낸 최항(崔恒)이라
고 하는데, 그 이후에는 거의 몰락하여
惠岡 또는 惠崗)을 즐겨 사용했고, 만년에 당호(堂號)로는 기화당(氣和堂), 명남루(明南樓)를 사용했다.
그는 출생한 뒤 매우 어린 나이로 종숙 광현에게 입양된 것 같다. 열 살 때인 1812년 봄에 아버지 최치현은 충청도 충주 지역으로 이사를 계획한 것 같으나 이해 3월 서거하였다. 1818년경 반남박씨 박
1, 요약
혜강 최한기(1803년 10월 26일 ~ 1879년 6월 21일)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 철학자, 사상가, 저술가이다. 본관은 삭녕(朔寧)이고, 자는 운로(芸老) 또는 지로(芝老), 호는 혜강(惠崗)·패동(浿東)·명남루(明南樓)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1800년 개혁군주인 정조가 급서하고 아들 순조가 11
기철학의 수용과 발전
1.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
우리나라에 성리학이 전래된 것은 고려말엽의 일로, 안향(安珦)에 의해서 처음으로 이 땅에 소개되었고 그의 문인 백이정( article_1 白正) ·권보(權溥) ·우탁(禹倬) 등에 의하여 비로소 수용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성리학은 그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