救荒)의 물자를 비축하게 하여 생민의 목숨을 구제하소서(이민수, 2000”‘라고 할 정도로 조선에서는 수재와 한재가 매우 극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지진
사료에서는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지진은 총 1,952건이 일어났다. 최초의 지진은 태조 2년(1394) 1월29일 발생했다. 태종 13년(1413) 1월16일에는
救荒 사업에 약 1년간 종사하였다. 61세 때 福建 澤州의 지사를 약 1년간 지냈다. 조정에 出仕하여 侍講을 약 40일간 하였으나, 반대파의 책동으로 조정에서 추방당해 건양의 考亭에 돌아왔다. 이후 僞學의 금지에 의한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생에게 학문을 강하다가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論)>과 <원목(愿牧)>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두가지 산문은 모두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다산의 답변을 담고 있는데 <탕론>에서 다산은,
“탕(湯)이 걸(桀)을 쫓아낸 것은 옳은 일인가? 신하로서 임금을 쳤는데도 옳은 일인가?”
라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선양(禪讓)’이 아닌
論)>과 <원목(愿牧)>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두가지 산문은 모두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다산의 답변을 담고 있는데 <탕론>에서 다산은,
“탕(湯)이 걸(桀)을 쫓아낸 것은 옳은 일인가? 신하로서 임금을 쳤는데도 옳은 일인가?”
라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선양(禪讓)’이 아닌
Ⅰ. 서론
불교 사상의 전개 과정을 알아보기로 하자. 불타가 입멸(入滅)한 후, 불교는 소승 불교를 거쳐 대승 불교로 발전하였다. 소승 불교는 수행자 자신의 정신세계에만 몰입하여 사회와는 분리된 엄격한 종교성과 개인의 해탈을 강조하였다. 이와 달리, 대승 불교는 중생과 감께 하는 대중 불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