星湖)이다. 1681(숙종7)년에 태어나 1763(영조39)년에 83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출생연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경신대출척(1680)이 일어나 아버지 이하진이 평안도로 유배를 간 해에 태어났다. 남인이었던 그의 가문이 몰락하던 시점에 태어난 이익은 부친이 유배 2년 만에 사망하자, 모친을 따라 경
茶山 丁若鏞은 조선봉건왕조가 붕괴과정에 있던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오랜 관료생활과 유배생활을 통해서 당시 사회의 諸矛盾을 몸소 체험한 유교주의 관료학자였으며, 한국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의 거봉으로서 우리나라 사회의 경제사상 전체에 특이할만한 업적을 남겼다. 茶山이 활동하던 18세기
Ⅰ. 實學이란?
실학이란 용어 자체가 조선후기의 실리를 강조하는 학문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실학이란 용어는 통시대성(通時代性)을 지니고 있고 어느 시대이든지 간에 그 시대에 있어서 현실성 또는 현실적 의의를 지니는 학문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지나온 역사를 보았을 때, 앞선 시대에 대응하
서론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修身)’이 그 절반에 해당하고, 나머지 절반은 ‘목민(牧民)’이다”라고 했다. ‘목민’이란 말은 원래 중국의 고전 관자(管子) 제1편 「목민」에 서 유래했다. 목민이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을 의미한다. 목민(牧 民)에서 목(牧)은
조선시대에 한자가 창제된 이후에도 문자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구어는 우리말이었으며 문어는 여전히 한자로 존속하였다. 특히, 상위계층인 사대부들은 한글을 천시하고 한문을 높이 평가하여 한자생활을 꾸준히 계속하였는데, 이들의 이러한 가치관과 문화가 반영된 것이 바로 한문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