唱詞者(창사자)와 가사에 곡을 붙이는 唱曲者(창곡자), 수용자인 향유층이 한데 어우러져 사설시조의 부흥을 꾀했다.
연행의 장은 곧, 유흥의 장이다. ‘막힌 것을 뚫고 맺힌 것을 풀어’ 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든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답답한 현실에서 느끼는 긴장을 해소하고 지친 감성을 위
唱詞)’라 보는 견해도 있다. 이는 삼대 가집은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는 가곡집으로서 거기에 실린 노래들은 가곡의 노랫말이기 때문에 가곡창사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조규익, 《가곡창사의 국문학적 본질》, 집문당, 1994, 2쪽.
음악으로서의 노래말을 가곡으로 부르느냐 시조로 부르
Ⅰ. 서론
1. 여항인과 여항문학
여항인은 조선 전기까지만 하더라도 어떤 특정 집단을 지칭한다기 보다 지배 계층이던 사대부에 상대되는 피지배 계층 즉 중서평민층을 두루 일컫는 명칭이었다. 그러나 임․병 양란을 거치고 숙종 때 이르러 양반의 실권이 쇠잔해짐에 따라 양반이 몰락의 과정을
Ⅰ.서론
조선조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들에게 三從之道와 七去之惡을 강조했을 뿐 개인적인 능력 개발이나 사회생활을 엄격히 차단하였으므로 여성의 문예 활동은 폐쇄되어 있었고 사대부 남성의 것, 한문학만을 문학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여류시인의 대부분을 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