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子라고 불릴 정도로 인품이 뛰어난 왕이었다. 그의 『三國史記』 즉위 초기 기록을 살펴보면 여색에 빠져 국정을 내팽겨 친 망국의 군주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용감하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우애가 깊은 왕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좋은 평가로 인해 元子인
曾子曰, 唯! 子出, 門入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증자는 여기에서 하나로써 관통하는 공자의 도를 충서로 여겼다. 충을 서와 관련시키는 증자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후학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충과 서를 해석했다. 후학들이 이 부분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증
曾子)에게 말했다.
“삼아, 내 도는 하나의 원칙으로 일관되어 있다(吾道一以貫之)!”
“예, 알고 있습니다.”
공자가 나가자 다른 제자들이 증자에게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선생님의 도는 오직 충, 서일 따름입니다.”
→ 증자는 여기에서 하나로써 관통하는 공자의 도를 충서로 여겼다. 공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