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燕王?入京後, 只魏國公徐輝祖, 尙抵敵一陣, 兵敗出走, 此外文武百官, 多迎謁馬前。
각설연왕체입경후 지위국공서휘조 상저적일진 병폐출주 차외문무백관 다영알마전
각설하고 연왕 주체가 남경에 들어온 후에 단지 위국공 서휘조만 아직 한 진영으로 적을 맞다가 병사가 패배하여 달아나고 이
고려말기에 이르러 귀족관료와 사원에 의한 토지의 겸병, 압량위천(壓良爲賤) 그리고
통치질서의 문란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점차 격화되었다. 한 국가의 지배층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회변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체제로 변화 발전시키지 못하는 경우 새로이 성장하는 개혁계층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