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으로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麗史』(57 지리 2)에서 ‘俗稱末通大王 一云 百濟武王 小名薯童’이라 한 것과 『세종실록』에서 ‘在郡西北五里許 俗武康王爲末通大王’이라 한 것을 전거로 삼아 서동이 백제 무왕이라는 것, 서동은 末子의 뜻인 ‘막둥이’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이라는 것을
武康)’로 시작된다.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은 백제에 무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강(武康)’을 ‘무왕(武王)’으로 치환하여 동일시하였다. 그러나 마한 소국 중 건마국(乾馬國)의 무강왕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바, 무강왕을 백제의 무왕으로 볼 수 있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 김
却說燕王?入京後, 只魏國公徐輝祖, 尙抵敵一陣, 兵敗出走, 此外文武百官, 多迎謁馬前。
각설연왕체입경후 지위국공서휘조 상저적일진 병폐출주 차외문무백관 다영알마전
각설하고 연왕 주체가 남경에 들어온 후에 단지 위국공 서휘조만 아직 한 진영으로 적을 맞다가 병사가 패배하여 달아나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