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회화는 명종부터 숙종까지 1550년에서 1700년으로 본다. 이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주변국가들과의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이 힘들어지고, 치열한 당쟁으로 정치 외교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지극히 불안했던 시대였지만 성리학과 양명학이 자리잡기 시작하고 회화 부분에서는 많은
제1기의 회화는 북송(北宋)의 곽희파(郭熙派) 화풍을 받아들여 그것을 우리 나름의 새로운 양식으로 개성있게 창조한 화가 안견(安堅)에 의한 안견파 화풍이 주류를 이루면서, 명대의 원체(體院 )화풍과 절파(浙派)화풍의 유입, 이상좌에 의한 남송(南宋)의 마하파 (馬夏)류의 화풍이 전개되었다.
1. 안견
Ⅰ. 서론
유달리 자신을 드러내는데 인색했던 강희안이 유독 [양화소록]을 이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한 그루의 나무, 한 포기의 작은 풀까지도 자세히 관찰하면 따스한 정과 깊은 생각이 있는데 하물며 인간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라는 그의 보편적 휴머니
➃ 미법 산수화풍
중국 북송 때의 문인화가인 미불, 미우인 부자가 창시한 화풍. 점을 여러 번 겹쳐 찍어서 형태를 표현하는 미점준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곡선의 흙산이나 멀어 보이는 나무 등을 그린다. 특히 비온 뒤나 짙은 안개가 낀 습윤한 자연경관을 그릴 때 즐겨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