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은 산동 반도 북쪽 등주
의상은 유학을 마치고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됨
의상이 떠나자 함께 따라 갈 수 없게 된 선묘는 자신이 용이 되게 해달라고 하늘에 빌면서 황해바다에 몸을 던짐
처음 세운 절은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그 다음이 태백산 근처 봉황산 아래 지은 부석사(浮石寺)
浮石寺)를 세웠다. 이 부석사 창건의 연기설화가 유명한 선묘용녀(善妙龍女)이야기다. 그는 여기서 배움을 찾는 제자와 일반백성들만 교화한 것이 아니고, 국왕까지도 감화를 받게하였다. 그를 존경한 왕이 장전(莊田)과 노복(奴僕)을 시주하였는데 그는 “우리 불법은 평등하여 종과 주인이 없으며, 또
浮石寺無量壽殿)부석사 조사당(祖師堂)수덕사 대웅전(修德寺大雄殿)강릉 객사문(江陵客舍門) 등인데, 이들은 모두 주심포(柱心包)집에 배흘림기둥을 하고 있다. 한편 북한에 있는 고려 건물은 고려 말에 들어온 다포(多包)집 계통이다. 남한의 고려 건물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전기의 건물
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조사당(祖師堂) 및 안동(安東) 봉정사(鳳停寺)의 극락전(極樂殿) 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가람배치의 여러 양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면서 발전되었다. 그 중 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탑은 원래 산스크리트의 스투파(stpa)와 팔리어(語)의 투파(thpa)를
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조사당(祖師堂) 및 안동(安東) 봉정사(鳳停寺)의 극락전(極樂殿) 등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가람배치의 여러 양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면서 발전되었다. 그 중 탑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탑은 원래 산스크리트의 스투파(stūpa)와 팔리어(語)의 투파(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