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韓非의 시대상황
봉건제도를 유지하고 있던 周나라가 천하의 제후를 통솔한 능력을 상실하게 되니, 제후들 가운데에서 강성한 자가 나타나 스스로 覇者가 되어 여러 제후들을 지배하는 春秋戰國時代가 시작된다. 춘추시대에는 오히려 尊周攘夷의 기치를 들고 나와서 宗主國인 周室을 높이고 이
內外儲)』,『설림(說林)』,『세난(說難)』등 십만여 자에 이르는 저작을 썼다. 그는 상앙의 법, 신불해의 술, 신도의 세를 비판하고 종합하여 법가 이론을 완성하였다. 한비자는 법과 술로서 국가를 통치할 것을 주장했다. 제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킨 한비자는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와 같은
內外儲」(내외저), 「說林」(설림), 「說難」(세난) 등 십여만 자의 글을 지었다. 후에 어떤 사람이 한비의 책을 진나라에 전하니, 진왕(秦王, 즉 秦始皇)이「孤憤」과「五蠹」의 글을 보고서 “아아,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서 교유하면 죽어도 한이 없겠도다!”라고 말했다 한다.
기원전 234년, 진
說이 지지를 받아 왔다. 그러나 근래에는 目的物의 所在地法에 의하여 준거법이 결정된다는 Savigny의 所在地法說이 지배적인 학설이 되고 있다. 그 후 Savigny가 動産을 3分하여 일정한 場所에 있는 動産에 대해서 所在地法을 적용할 것을 주장한 이래 各國에서 動産物權에 대하여도 目的物의 所在地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