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이고 강력한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던 북인계열을 몰락시킨 인조반정 이후 정권다툼은 남인과 서인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에서 사계 김장생을 거쳐 내려오는 서인의 정통 학맥을 이어온 인물로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암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을
王道主義)에 입각하여 왕이 재해 및 빈민구제를 대단히 중요시하게 되었다. 조선초기의 빈민구제의 원칙은, 첫째로 빈민구제는 왕의 책임이며, 둘째로 구제의 신속을 중시하고, 셋째로 일차적인 구빈행정의 집행은 지방관이 책임지며, 넷째로 중앙정부는 수시로 구제에 대한 교서를 내려 필요한 관계
王道主義에 입각한 이상적인 군왕의 공덕을 말함이라 하겠다. 그 예로 韓生이 용왕에게 바친 상량문의 첫 부분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竊以堪輿之內 神龍最靈 人物之間 配匹至重 旣有潤物之功 可無愆福之基……"
"생각하건데, 천지란에는 용왕님이 가장 신령스럽고, 인물의 사이에는 배
王道政治論)을 내세우며 그 뜻을 설파하기 위해 여러 제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기에 무엇보다 왕이 공적 의로움을 추구하는 것을 중요시 하였다.
인간의 본성을 이기심으로 여기고 있는 순자 역시 사적 이익이 팽배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는 사적 이익이 팽
主義)덕치주의(德治主義)문치주의(文治主義)의 정책과 제도들은 조선왕조를 건국한 신흥사대부 집단들이 구축하고 표방했던 유교정치 이념 위에서 구현된 것이었다. 유교의 정치 이념은 맹자가 주창하였던 하나의 이상정치, 요순(堯舜)의 정치로 일컬어지는 왕도정치(王道政治)로 표현된다. 그것은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