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며 회수의 자물쇠가 등주와 내주는 해동의 보장이 된다.
今登州有守, 曹、?無虞。
지금 등주에 수비가 있으니 조와 복에는 염려가 없습니다.
所慮者, 南有淮安?萬雄兵, 北有保、河、德州三郡强敵, 南北交相猝發, 我則疲於奔命。
奔命 [b?n//m?ng] ① 필사적으로 일을 하다 ② 죽을 힘을 다하다
登州, 却折了虎將!”
여군사가 눈물을 뿌리며 말했다. “비록 등주를 뽑아내서 호랑이 장군이 죽었다!”
命厚禮棺殮, 又具牲?祭奠;
두터이 관을 해서 염하게 하며 또 희생 술을 갖추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
軍士莫不感激。
군사는 모두 감격을 했다.
仝淳風前稟道:“膠州衛負固未服, 不才與膠
登州水城) 해안에서 발굴 인양된 것으로 중국으로 장사를 하러 떠났던 14세기 무역선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사에 참여했던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의 김성범 관장은 “지금까지 발견된 선박의 규모로는 고려의 원양 항해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선박은 원양
우선 고려왕조의 선대는 강충(康忠)이나 작제건(作帝建)의 혼인설화가 모두 바다와 관련되어 있는데서 볼 수 있듯이 신라 말에 일어났던 해상세력으로 추측 된다.
그래서 인지 고려는 일찍부터 중국과의 통교를 통해 교역 하였다.
934년(태조17) 7월에는 고려 상선이 후당(後唐) 등주(登州)에 가서 교역
登州)에 이르는 지역일대에 많은 신라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연안 운송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도 있었고, 양주(揚州)·소주(蘇州)·명주(明州) 등지에서 아라비아·페르시아 상인과 교역하는 한편, 중국과 신라·일본으로 내왕하며 국제무역에 종사하던 자들도 많았다. 해안지역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