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말기의 회화
조선말기의 화단의 중요흐름을 살펴보면 첫째, 후기에 유행했던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와 풍속화가 위축되었다. 둘째, 김정희 파를 중심으로 하여 남종화(南宗畵)의 유행이 지배적 경향으로 대두되었다. 셋째, 참신한 이색화풍이 형성되었다. 넷째, 장승업계와 허유계의 계보가
眞景山水畵)와 풍속화(風俗畵)가 위축되었다. 김정희(金正喜)파를 중심으로 하여 남종화(南宗畫)의 유행이 지배적 경향으로 치달았다. 김수철(金秀哲), 김창수(金昌秀), 홍세섭(洪世燮) 등 일부화가들에 의해 참신한 이색화풍(異色畵風)이 형성되었다. 장승업(張承業)系와 허연(許鍊)系의 계보가 형
眞景山水畵)를 발달시켰으며, 곧이어 일반 서민들의 생활상을 표현한 풍속화가 순수 감상화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해갔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농업 생산력과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은 회화의 제작 수요층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후기 이전까지 회화의 수요층은 주로 왕공 사대부와 문인들로
眞景山水畵ㆍ民俗畵가 성행하는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전통적인 양식을 지양ㆍ극복하고 새로운 양식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드러났다.
이처럼 임병양란 이후의 시기에 있어서 주목되는 것은 문학부문이든 음악ㆍ미술부문이든 모두 새로운 양식이 대두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시가문학 부문에서는 장
(眞景山水畵)'라는 회화 장르로 발전된 것은 국풍화와 함께 실경을 자신의 회화세계에 적극 투영시킨 정선과 그 이후에서이다.
실경산수화란 당시까지 전통적으로 답습되었던 방고(倣古) 즉, 옛 그림을 모사하던 풍조에 반기를 들고 우리의 산수를 표현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그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