筆寫本이었는데 반해, 조선왕조실록은 거의 대부분이 활자로 인쇄되었다. 이는 다른 나라는 한두 질 생산에 그쳤으나, 조선은 실록을 후세에 온전히 전하기 위해 4-5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활자 인쇄가 더 편한 방법으로 택해졌던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활자 인쇄술의 토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美의
筆寫本 30×19.8cm.
①창작 연대와 창작경위
이 책은 숙종38년(강희51, 1712) 임진년 동지사 조선시대에 명(明)나라와 청(淸)나라에 정기적으로 파견한 사신. 대체로 동지(冬至) 절기를 전후하여 보냈으므로 동지사라 하였다.
겸 사은사 조선시대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 보냈던 답례 사신. 정기적인 사신
筆寫本)이다. 120회본은 고악(高具)이 쓴 40회본을 덧붙여서 1791년경 정위원(程偉元)에 의해 간행되어 ‘정갑본(程甲本)’이라 하고, 이 ‘정갑본’을 개정한 것이 1792년에 간행하였다는 ‘정을본’이다. 정위원(程偉元)과 고악 두 사람이 후속 40회를 합쳐 활자본으로 1791년(건륭 56년) 겨울, 1792년 봄, 1792
아득한 옛날에는 오늘의 韓半島(한반도)와 滿洲(만주)에 걸친 넓은 지역에 여러 언어들이 널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히도 이들은 거의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소멸하여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옛 史書(사서)에 토막 기록들이 더러 전하여 이 언어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을
목 차 -
1. 머리말
2. <병와가곡집>의 체제와 특징
1) 가집의 명칭
2) 편찬자 및 편찬 시기
3) 가집의 필체와 편제상의 특징
4) 음악 관련 기록의 검토
5) 곡조와 수록 작가의 검토
3. <병와가곡집> 편찬의 문학사적 의미
1. 머리말
본고에서 논할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이하 ‘병가’라 약칭)은 1,109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