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조선의 무뢰배들
우선 조선시대에 칼을 쓰던 사람들이라고 한다면야 장수로 대표되는 무인(武人)들이나 별운검(別雲劍) 별운검 :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이들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세조실록」에 보면 세조 2년 6월 2일 기록에 “대개 어전(御殿)에서는 2품 이상인 무반(武班) 2명이 큰 칼을
純祖) 때와 그 이후에는 권삼득(權三得)을 비롯한 고수관(高壽寬)·송흥록(宋興祿)·염계달(廉季達)·모흥갑(牟興甲)·신만엽(申萬葉)·박유전(朴裕全)·김제철(金濟哲) 등 이른바 판소리 8명창이 나와 조와 장단을 확대시킴으로써 그 음악성을 충실히 발전시켜 판소리를 크게 번성하게 하였다.
이어 조선
純祖 즉위(1800) 이후 3대 60여 년에 걸친 외척의 발호와 전횡으로 인한 세도정치는 국정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온 몸으로 이를 체험한 왕손 李昰應은 유명무실해진 왕권회복을 위해 切齒腐心, 시정에 엎드려 기회를 엿보다 철종이 後嗣없이 승하하자 어린 아들 命福을 내세워 왕위를 승계하는데 성공하
純祖朝)에 의정부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었던 공인모의 부인이다. 이름은 여성에겐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까닭에 남편이 붙여 준 그녀의 거실명(居室名)만 전해올 뿐이다.
영수합은 14세 되던 해에 홍인모(洪仁謨)와 혼인을 한다. 시조 洪지경은 고려 때 국학직학을 지냈고, 그의 7대조이자 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