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國全圖’이었다. 이 지도는 당시 일본, 중국을 비롯해 인도의 일부만을 알고 있던 조선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며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하며 중국과 조선도 결국은 그 일부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함으로써 중화사상의 탈피를 도모했다.
하지만 이런 근대적인 변화도 일어났던 반면
밍 타이쭈 주위엔장은 중화(中華)의 회복을 건국이념으로 하였기 때문에 복고정책을 실시하였다. 주쯔(朱子)의 가르침에 따라 육유(六喩)를 선포하고 과거제를 실시하였으며 <탕률(唐律)>을 모방하여 <따밍률(大明律)>과 <따밍령(大明令)>을 반포하였다. 또한 그는 밍제국의 기초를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명의 태조 주원장은 원나라의 정치가 문란하고 국력이 쇠진한 틈을 타 한족 국가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1368년 명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하여 감세와 면세를 실시하고 수리사업과 개간사업을 추진하여 생산 촉
Ⅰ. 서론
어떤 곡물을 어떻게 심고 거두었는지 밝히는 일은 특정한 시대의 역사 지형을 그리는 데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인류의 거의 전 시기를 통해서 농업은 산업의 근간이었고, 농사짓는 일이 생활의 전부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즉, 한국사 연구에서 농업사를 매우 중요하게 인식했음은 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