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론
중국의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정신적 산물의 역사적 발전에 있어서 그 推移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를 지적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經學 의 발전을 꼽을 수 있다 경학은 孔子의 교육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漢代에 이르러 儒學의 담론이 통치이념으로 채택된 이후부터 고대
한고조는 중국을 다스림에 문사(文事)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학문을 크게 장려하였다. 그런데 진화의 액[秦火之厄]과 항우의 병선[項羽之兵]을 겪으면서 많은 중요한 전적(典籍)들이 사방으로 산실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이 당시의 학자들은 선진제가들의 학설을 수집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철
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백가를 몰아내고 유가만을 높이는 정책을 폈으며 오경박사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유가를 숭상하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면적으로는 도가 사상, 음양학, 참위설, 법가 사상 등이 유가의 또 다른 면을 보완해주고 있었다.
한나라 때부터 유교가 국교화되어 사상이
董仲舒와 王充의 철학적 논점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겠다. 董仲舒의 철학사상이 天人合一을 대표한다면 王充은 天人分二를 대표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철학자는 활동했던 시기가 다르므로동중서는 한초 무제 시기에 활약했던 인물이다. 대략 기원전 179-104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왕
제9장 가의(賈誼)에서 중장통(仲長統)까지
1. 개설 3. 동중서(董仲舒)
2. 가의(賈誼) 4. 종합 정리(토론)
1. 개설
1)유학의 부흥
옛 학설에 의하면 옛 학술은 진(秦)에서 훼손되어 사라졌다가 한()대에 부활했다고 한다. 실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는 법치를 참되게 행하지 않았고, 또 유술을 막아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