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병의 대가로 한강 유역의 영토 반환을 요구하였으며 신라는 이를 거부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의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당나라와 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협공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신라의 요청을 받은 당 고종(재위 649~683)은 소정방(蘇定方)으로 하여금 신라를 원조하도록 지시했다.
세력은 복신(福信)과 도침(道琛), 흑치상지(黑齒常之) 등이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흑치상지는 한 때 3만 명의 백제 군대를 수습하여 당의 소정방(蘇定方)을 격퇴하고 임존성등을 비롯한 200여성을 회복하기에 이르렀다.
복신은 주로 백제 부흥군과 일본천황가 사이에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蘇定方)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 김유신의 5만 병력과 합세하였다. 계백의 용전도 효과 없이 사비성이 함락된 후 4년간의 백제부흥운동도 실패로 돌아가고 백제는 망하였다.
2) 고구려의 멸망: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였다. 고구려는 수·당과의 거듭된
蘇定方)을 시켜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산동(山東) 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660년 신라와 당은 군사동맹을 맺어 백제왕도의 남쪽에서 만나 사비도성을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백제에 대한 침략을 단행하였고, 백제 조정에서 나당연합군을 방어할 대책을 세우는 동안 김유신이 이끄는
1. 개요
그림 . 신라의 통일 과정과 통일 신라의 성립(7세기)
ㆍ676년,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한 후, 당나라군을 대동강 북쪽으로 축출하여 한반도를 통합한 사건
ㆍ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백제와 왜(倭) 연합군을 격파한 뒤, 고구려와 돌궐 연합군을 격파하여 통일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