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悟의 체험 이후의 사건이라는 사실, 즉 그러한 해오의 실현으로서의 그의 실천의지, 그리고 知行合一의 현실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을 돕는 방편으로서 송조의 시에 황(謝枋)이 편찬한 모범적인 문장들의 모음에 서문에서 그는 성인이 되는 길의 공부는 기본적
3. 돈오의 문제
지눌은 선(禪)의 수행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하는 열반, 또는 『진심직설(眞心直說)』에서 이르는 진심(眞心)에 이르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돈오의 길이고, 둘째는 점수의 길, 셋째는 간화의 길이다. 지눌은 돈오와 점수를 거쳐 간화의 길에 들어섰지만, 개인의
Ⅰ. 지눌의 생애와 저서
지눌은 1158년에 태어나 1210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평생 결코 나라밖으로 나간 적은 없었으나 사실상 모든 분야의 동아시아 불교를 통괄하고 그에 관한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선불교 수련 단체인 수선사의 토대를 수립하기 위하여 평생을 진력하였다. 그가
1. 시대적 배경
국사는 의종(毅宗) 12년(1158)에 태어나 희종(熙宗) 6년(1210)에 돌아가셨다. 4대에 걸쳐 불과 52년이라는 짧은 주세 기간이었다. 그러한 이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기보다는 오히려 불안과 변화의 소용돌이가 연속되고 있던 시대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1. 돈점 논쟁의 발단과 대립 논점들
조계종 종정이던 성철(性徹) 스님은 <禪門正路>를 세상에 냄으로써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의 논쟁’이 시작 되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를 두고 성철 스님은 “몹쓸 나무가 뜰 안에 났으니 베어 버리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조계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