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나는 어렸을 때 어렸을 때: 원문의 ‘毁’이다. 毁齒와 同語. 어린아이가 배냇니를 갊.
부터 고문을 즐겨 읽었다. 글에 대한 안목과 마음이 높아서, 말세의 여러 작품들은 대수롭지 않게(번번이) 손으로 찢어버리고, 입으로 침을 뱉으며, 가장 고상한 고문을 찾아 읽었다. 용사해 용사(龍蛇): 각각 임진
跋文)」에서 시조를 지어야만 했던 이유를 적고 있다. 이황은 당시의 노래들을 비판한다. 「한림별곡(翰林別曲)」류는 방탕스러운 기풍으로 들떠 있고, 이별(李鼈)의 육가(六歌)는 좀 나은 듯하나 오만에 가득 차 있어 권할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이것들은 풍속을 교화하고 자신을 수양하는 데 별 도움
跋文)을 썼다.
우리말 노래를 먼저 내놓고, 한시 번역을 곁들인 다음, 자세한 주해가 한문으로 적혀 있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한시 번역은 넉 자 넉 줄을 기본으로 하는 시경체(詩經) 중국 고대의 민요와 궁중에서 사용되던 가사를 수집 정리한 것으로 은대(殷代)로부터 춘추 시대에 이르는 수백 년간
跋文)을 통해 퇴계가 이 노래를 짓게 된 연유를 알아보도록 하자.
도산십이곡 발(陶山十二曲跋)
오른쪽의 <도산십이곡>은 도산노인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것을 지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란하여 족히 말할 것이 못 된다. <한림별곡>과 같은 류는 문인의 입에서 나온 것이
跋文)에 간행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다.
한편 ≪중종실록≫에는 이 책이 1518년 7월에 간행되어 1,300질이 널리 배포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다(권34, 13년 7월 己亥). 남곤의 발문에 광인유포(廣印流布)하여 아동부녀(兒童婦女)에게까지 그 내용을 널리 깨닫게 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다고 한 것과 부합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