進士科는 製述科라고도 하며 本科試驗에서는 試驗官들이 臨席하여 監察들로 하여금 借作借筆들을 못하게 嚴重히 단속하는 한편, 題目을 내고 韻字를 定하여 詩를 짓게 하여 時間을 엄수토록 命한다. 이에 應募者들은 各者 準備된 筆墨으로 詩를 지어 壯紙에 十八首를 써서 對하여 試驗官에게 내고 退
進士科 출신자들은 점차 唐朝의 대부분 요직을 독차지하였으며 송대 이후의 과거가 진사과 단일체제로 전개되어 간 것도 이와 관련성이 깊다. 그러므로 唐代史나 科擧制度史와 관련하여 이 시기 進士科의 이해는 긴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진사과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시 이를 둘러
進士)에 김생(金生)이라고 하는 소년 선비가 있었는데 얼굴이 뛰어나게 아름답고 풍채가 절륜하였다. 글을 잘하고 우스운 이야기를 잘하였으니, 참으로 세간에 있어서의 한 기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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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겨우 15세에 진사 제일과(第一科)에 오르니, 이름이 장안을 움직여 공경대가에서 사랑하는
進士科)에 합격하여 정조를 만나게 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연마에 노력하였다. 이 무렵부터 정조는 다산을 크게 성장할 신하로 믿고 총애를 하여 다산이 큰 학문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28세에 마침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한 다산은 정조의 총애와 신뢰 속에 승승장구 하였다. 초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