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詵)이 지나가다가 “이곳에서 성인이 나시리라”라고 외치고는, 융에게 “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도선은 왕건이 17세 때 다시 찾아와 “너는 장차 왕이 될 운명이다.”라고 알리고, 병법과 각종 술법 등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왕건
道詵의 生涯와 羅末麗初의 風水地理說, 韓國史硏究, 2, 1975. pp.129-130.
金光彦도 신라 제4대 왕인 탈해가 호공의 집터가 三日月形의 길지임을 알고 꾀로 호공의 집을 빼앗아 살았기 때문에 왕이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과 신라의 도성이 半月城이었고 백제 도성인 부소산성의 이름 또한 반월성이었던
道詵)의 술을 배워, 남경으로 환도하기를 청하며 올린 상서에서 “도선기에 이르되 고려의 땅에 삼경이 있으니(중략) 개국 후 160여 년에 목멱양에 도읍을 한다고 하였으니 신은 이때가 정히 새 서울에 순주할 때라고 생각하나이다 『高麗史』 卷 122, 列傳 35 金謂.
.” 라고 하였다. 이 내용을 통해서 알
道詵國師)가 고산사를 창건하였습니다. 고산사를 창건한 도선국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선국사는 신라말의 승려로 풍수설의 대가입니다. 850년에 천도사에서 불교에 입도하게 되고, 운봉산에서 수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당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밀교승려 일행으로 풍수설을
道詵) 국사가 중건하고 다솔사라고 하였다. 그 뒤 1326년(충숙왕 13) 나옹(懶翁)이 중수하였고 조선 초기 영일·효익 등이 중수하였으며,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686년(숙종 12)에 다시 지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된 대양루(大陽樓)를 비롯하여 경상남도 문화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