却說朝鮮自迭遭亂事, 國勢愈衰, 國王李熙, 又是個貪安圖逸的人, 凡事都因循苟且, 不願振作, 因此日貧日弱, 寇盜紛起.
각설조선자질조난사 국세유쇠 국왕이희 우시개탐안도일적인 범사도인순구차 불원진작 인차일빈일약 구도분기
각설하고 조선은 번갈아 난리를 만나 나라 기세가 더욱 쇠약하고 국
遼)나라의 4개 부도읍 중 하나였지만, 정치적 도시로서 본격적인 빛을 본 것은 원나라(元, 1271~1368) 때부터였다. 유럽까지 영역을 넓힌 칭기즈칸은 1215년 오늘날의 베이징 지역을 점령하고 연경(燕京)으로 명명하였다. 1272년에는 쿠빌라이(世祖, 1215~1294)가 수도를 연경으로 옮기고 이름을 대도(大都)로 개
遼), 북서에는 서하(西夏)라는 오랑캐의 2대 강국을 가까이 두고, 때로는 굴욕적 외교를 강요당하는 일도 있었다. 따라서 자연히 군비를 강화할 필요가 절박하였고, 그 때문에 행정이나 재정의 합리화를 피할 수가 없었다. 유명한 왕안석(王安石,1021-1086)의 새 법도 그결과 생겨난 하나의 산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