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鑑錄 등의 도참서가 유행하였다.
水雲은 이러한 상황에서 백성들이 불안과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편안히 살 수 있고 나아가 그들에게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는 濟世救民의 종교적 계기를 마련하고자 동학을 주창하게 되었다.
동학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그는 1860년에 『龍潭歌』와 『
鄭鑑錄)>과 같은 예언서가 널리 유포되며 미륵신앙, 도참사상 등 다양한 형태의 반봉건적 민중사상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제우는 유(儒)ㆍ불(佛)ㆍ선(仙)과 같은 기존의 사상들로는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계책”(포덕문)
정당화하고 천도문제를 정착시키는 데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정감록 鄭鑑錄〉도 이러한 음양사상을 집대성한 것으로, 끊임없이 민중들의 정서를 지배하면서 홍경래(洪景來)의 난을 비롯한 많은 난과 민중 항쟁의 사상적 원동력이 되었다. 음양사상은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Ⅰ. 신앙생활의 개념과 도입부
종교란 인간의 정신문화 양식의 하나로 인간의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관하여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와 연결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힘을 빌려 통상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인간의 불안·죽음의 문제, 심각한 고민 등을 해결하
제국주의의 침입과 근대화 운동
1876년 일본에 의한 개항으로 이루어진 강제적이고 불평등한 국제사회로의 편입은 조선에게 자주권 회복과 근대화 성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부여하였고, 각 사회집단이 처한 사회적 위치와 그에 따른 근대적 전망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고 상이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