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州:경상도 함안(咸安)]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가 쿠빌라이에게 제공한 日本에 관한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정보는 금주에 있던 日本 상인(商人)용 객관(客館)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예상된다.
조이를 중심으로 한 부원세력(附元勢力)이 쿠빌라이에게 일본초유를 부추겨 고려조정을
金州의 소관은 嶺東道로, 晋州의 소관은 山南道로 각각 삼았는데 그 후 어느 때인지 알 수 없으나, 그 3道를 합하여 慶尙道로 삼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예종 원년(1106)에 慶尙晋州道로, 명종 원년(1171)에 慶尙州道․晋陝州道로 각각 개칭했다가 동왕 16년(1186)에 慶尙州道로 다시 개칭했다는 것이다.
却說葉志超旣逃歸遼東, 丁汝昌又敗回旅順, 警報迭達北京.
각설섭지초기도귀요동 정여창우패회여순 경보질달북경
각설하고 섭지초는 이미 요동에 도망가고 정여창도 또 패배하여 여순에 돌아갔다는 놀라운 보고가 번갈아 북경에 도달했다.
光?帝大爲懊惱, 卽命將葉志超、丁汝昌革職, 衛汝貴、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