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志)》 <위지(魏志)>동이전이다. 이에 의하면 마한은 55개, 진한과 변한은 각각 12개의 소국으로 구성되었다.
Ⅰ. 삼한
1. 삼한의 형성
《사기(史記)》 <조선전>과 《한서(漢書)》 <조선전>에 의하면 BC 2세기 경까지도 한반도중남부지역은 <진국(辰國)> 또는 <중국(衆國)>으로 기록되었으며, 진한 또는
國志(삼국지)의 진왕 관련기록에 잘못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1 基十二國屬辰王 辰王常用馬韓人作之 世世相維 辰王不得自立僞.
기십이국속진왕 진왕상용마한인작지 세세상유 진왕부득자립위
(12국을 통속하고 있다는 진왕은 항상 마한인으로 삼으며 대대
國)은 단순히 삼한으로 불리는 집단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집단이 포용되어 형성된 사회였고 정치제의 성격 및 발전양상도 달랐기 때문에 모두 동일한 수준의 정치체가 아닌 각 정치체간의 격차가 있는 존재였다.
(2)사료를 통한 삼한소국의 규모
①소국의 서열성
馬韓(중략) 凡
國)’와 연결 짓기도 한다. 신라는 왕실의 성씨가 김씨(金氏)요, 왕성(王城)의 이름이 금성(金城)이었을 정도로 국가 자체가 쇠와 너무나 친숙한 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양질의 철광에서 산출되는 철로 농기구와 무기를 제작함으로써 농업 생산력과 무력기반의 획기적인 증대와 강화를 이룰 수 있었다.
國邑(국읍)으로서 정치적 治所(치소)가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斯盧國(사로국)이 六村(대촌)으로 구성되고 駕洛國(가락국)이 九村(구촌)으로 구성된 데서 입증이 된다.
소국을 구성한 읍락들은
其俗重山川(기속중산천) 山川各有部分(산천각유부분) 不得妄相涉入(부득망상섭입)
에서 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