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황정견(黃庭堅)
1. 생애
황정견(1045~1105)의 자는 魯直이고 호는 山谷 江西 修水縣 사람이다. 소문사학사의 한사람인 그는 스승 소식과 함께 시, 사 등에 걸쳐 가장 탁월한 업적을 남겨 소식과 더불어 ‘소황(蘇黃)’이라 불렸다. 특히 그는 환골탈태를 주창하면서 새로운 시경을 개척하는 한편,
黃庭堅)과 함께 ‘황진(黃陳)’이라고 병칭되었다. 두 사람은 강서시파(江西詩派)의 시조(始祖)로서 모두 두보를 숭배하여, 그의 작품과 사상을 본받아 서술하고 밝힘으로써 송시(宋詩)의 전기(轉機)를 마련하였다. 저서로는 『후산시화(後山詩話)』가 있다.
를 말했으며, 모두가 스스로 말하였다.
“그
黃庭堅)·미불(米? 등의 반정통파에 맞서 고서(古書)를 널리 연구해서 복고주의(復古主義)를 제창하였다. 그래서 왕희지(王羲之) 이래의 전통적인 서도의 풍격(風格)을 새로이 살려 한 시대에 획을 그었다.
<도예>
원나라의 도예는 작품도 적고 문헌자료도 아주 적어서 그 실정을 밝히기는 어렵다. 단지
黃庭堅)이나 소식(蘇軾)의 문집을 숙독해 시 짓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 창작수련이 그렇게 생각한 데 근거를 두었다. 물(物)을 새롭게 탐구할 필요는 없고, 마음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물을 매개로 삼는 탁물우의(托物寓意)의 수법을 연마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일이라고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