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범위 내에서 중인가객들에 의해 편찬된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삼대 가집에 대한 서지학적 내용을 살펴본 뒤 시기와 맞물려서 달라지는 중인가객들의 연행 유형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대표적인 중인가객들의 작품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곡창이나 시조창으로 연행된 문학이었다. 몇몇 곡조가 정해져 있고, 여기에 시조 작품이 개별적으로 대응되는 방식이었다. 이 때에는 시조 작품 그 자체보다 가락과 곡조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시조의 개별적인 고유성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으
연행일기(燕行日記)』가 전하고 있으며 이 체험과 관련된 시조 1수도 발견되고 있어 흥미롭다. 이 세 작품의 실체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 봉황성(鳳凰城) 돌아들어 고향 어디메오./ 팔도하(八渡河) 가에 갈잎에 자리 보아/ 삼경(三更)에 겨우 든 잠을 여울 소리에 깨과라.
⒝ 난하(
연행 상황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형식이 기본형에서 약간씩 벗어남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경기체가라는 장르적 틀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연행 장소가 사적인 연향의 자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관동별곡」에서는 후렴구 ‘偉(爲)~景 긔 엇더니잇고’
4) 형식에서의 특수성
경기체가는 작품과 시대에 따라서 그 형식에 변화가 많이 나타난다. 율격상으로는<한림별곡>과 같은 정격형에서 출발하여 후대로 올수록 점차 변격형, 파격형으로 변화되어 그 율격의 형식이 자유로워진다. 이러한 율격적 변화는 그 장르적 성격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