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무희로 존재해 오면서 한나라(BC220-206) 때에 이미 궁정에 광대들이 있어 가면무나 잡희가 성행하여 가무형능의 예능이 존재하여 당대( 618-907)에는 수대의 연극을 이어 받아 가무잡희가 성행하여 큰 발달을 이루게 되면서 중국 연극사에서 희극을 발전시킨 공로자인 음악의 황제 현종이 양귀비를 즐겁
가무희(歌舞戱)와 골계희(滑稽戱)라는 민간예술로 계승되었다.
1. 가무희(歌舞戱): 종교적인 성격의 원시가무를 계승한 가무희는 종교적 의식인 나례(儺禮)와 종교적 의미를 탈피한 순수오락을 위한 가무희로 각기 발전한다. 나례는 바로 매년 섣달 그믐날에 거행되었던 종교적인 의식으로서, 곰가죽을
가무희(歌舞戱), 강창(講唱), 골계희(滑稽戱)
도시경제의 발전으로 시민들의 오락추구가 민간연예를 발전시키는 추동이 되었다. 특히 강창은 백화로 쓰인 본격적인 소설을 발달시키고 가무희와 골계희는 강창과 함께 원잡극(元雜劇) , 지방희 등을 칭하는 대희(大戱)를 발전시킴.
강창이란 중당때
가무희와 골계희(滑稽戱)라는 민간예술로 계승되었다. 희곡의 특징이 노래, 춤, 배우, 대사 등이 모두 포함된 종합예술이라는 점이라는 것을 볼 때, 원시가무와 그로부터 이어지는 가무희, 배우와 그의 발전형식인 골계희 (참군희), 설화(또는 설창)은 각각 노래와 춤, 배우와 연기, 대사와 줄거리 등의
가무희에 대하여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그 실상을 알려주는 데 의의를 지닌다. 또한 중국 송대의 가무회에 대한 내용까지 알려주어 중국의 역사를 알려주는데도 도움을 준다. 따라서 문학사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치가 큰 문헌이다. 본 발제지에서는 「악지」의 구조와 내용(아악, 당악, 속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