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가야의 멸망 과정
역사상에 나타났던 정치세력들은 그 시초를 알기는 어려우나, 멸망과정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한 결말을 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야의 경우에는 체계적인 역사기록을 남기지 못한 채 562년 신라에게 멸망함으로써, 그 세력의 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멸망 과정 이르기까지
들어가며
가야는 5세기 이후 전라도 남부와 낙동강 이서 지역 일대로 상당한 세력권을 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연맹체에 머물다가 신라세력에 의해 흡수됨.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고고학적 유물을
가야는 5세기 이후 전라도 남부와 낙동강 이서지역을 일대로 상당한 세력권을 형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이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연맹체에 머물다가 신라세력에 의해 흡수되었다. 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고고학적 유물을 중심으
한반도 남부에 위치해 있던 소국의 연맹체
가야, 가락, 가라, 구야 등으로 불렸으며 왜에서는 ‘임나’라고 부름.
AD42-562년. 약 520년간 존속 후 신라에 병합
김해 지방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철을 바탕으로 국력을 키웠으며 왜 등지와 교역 하였으며 가야의 철기 문화는 뛰어난 수준으로 평가된다.
니
가야 그리고 일본열도의 규슈세력과 야마토정권이 구성하는‘ 한·일 지역세계’의 축이었다. 정효운, 동의대학교 연구논문 「6세기 한일관계사의 재구축-왜와 임나관계의 재해석을 중심으로」, 2008
그 당시 중국은 남, 북조 시대였는데, 남북조란 한족의 송, 제, 양, 진 등의 남조와 유목민족의 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