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해안 대전
가야는 초기부터 신라를 상대로 활발한 군사 활동을 벌였다. 《삼국유사》에는 김수로왕(金首露王)과 석탈해(昔脫解) 집단 사이의 분쟁에 대한 간접묘사로 두 사람이 도술 대결을 펼쳤다는 이야기가 나타나있다. 수로왕에게 패한 석탈해가 신라의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양국의 사이는
가야는 통합된 결집체로서의 단일국가가 아니라 여러 소국들의 연맹체였기 때문에 각 소국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적인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토기문화에 있어 이러한 특징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에 각 지역권별 토기양식(樣式)의 규명은 해당지역 집단의 규모, 존속 기간, 영향력뿐만 아니
1. 머리말
1) 가야사 연구의 현황
우리나라 고대사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에 연구되어 야 할 대상 가운데 가야사 분야는 적지 않은 과제를 갖고 있는데도, 고구려, 백제, 신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1990년대 이후 가야사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
Ⅰ. 가야시대의 형성과 발전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존립했던 정치 집단 중에 삼국의 변진 구야 국(狗耶國) 과 같은 집단은 철 자원의 발달, 농업의 다양화, 정치, 문화적 발달 속에서 수로(首露) 집단과 같은 새로운 지배 세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수로집단의 대두와 구야 국
Ⅰ. 머리말
일반인들은 흔히 한국의 고대를 고조선ㆍ고구려·백제·신라ㆍ통일신라ㆍ후삼국의 흐름으로 이야기한다. 가야라는 국가가 분명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야사를 신라사의 일부로 보거나 철기를 토대로 하여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있었고, 신라에 의해 망한 작고 힘없는 나라로 보는 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