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영유권문제에 대한 관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간도영유권 분쟁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우리는 간도영유권 분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간도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우리 민족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간도
문제는 분쟁의 소지가 있다. 원래 간도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영토분쟁단계로 남아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형태로 고착화 된 것은 1909년에 체결된 간도협약을 통해서였다. 그 이전 간도는 중국의 땅도 아니고 조선의 땅도 아니었다. 간도협약은 잘못된 조약인 을사조약에 근거해서 당
문제가 신장지역 분리주의 문제, 원난(雲南)-광시(黃西)지역의 마약문제, 남산군도의 영유권문제등과 더불어 국가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변강문제의 일환으로 동북변경이 연구과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1994년 북한 핵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한반도 상황에 대한 예방적 연구의 필요성이 크
일본이 대한제국과 을사조약을 발효. 강제적으로 외교권이 일본에게 넘어가버림. 협상은 이제 청과 일본이 함.
⑧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만주에 철도를 놓아 유럽으로 가는 길을 낼 수 있는 점을 간도영유보다 우선해서 간도에 대한 영유권은 청에 있다고 인정해 청과의 불화요소를 없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