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주 키워드는 정치사 이다. 정치사 안에 경제, 문화, 전쟁, 사상등 주요 쟁점들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 조선의 당쟁, 붕당정치는 이미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다루어져 일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이것은 조선의 멸망과도 결부되는 문제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17세기 조선 사회는 사상사적 측면에서 두 가지 현저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첫째는 당면한 사회 피폐의 구제와 제반 모순의 개혁에 현실적 관심을 집중시켰던 실학사상의 대두이며, 둘째는 예학과 존주론 등으로 표현된 성리학의 경직화 현상이었다. 후자는 특히 전통적인 관념과 질서를 유지하려는
예송논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까닭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이것이 단순한 학술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정권의 교체라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며, 그 과정과 결과에서 조선 후기의 정치와 사회상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예송 논쟁인 기해‧ 갑인예송
1. 머리말
청풍김씨 가문은 조선후기 정치사적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다뤄보겠지만 김식 때부터 서울지역으로 편입하였지만 본격적인 정계활동은 김육(金堉)이라고 볼 수 있다. 한당의 영수인 김육은 학문적으로 소옹학(邵雍學)을 바탕으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