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양화소록을 읽고 지금의 식물도감이랑 비교했을 때 너무 놀랐습니다. 지금의 도감은 사실을 그대로 설명하거나 사진이 들어있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양화소록은 글만 읽고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묘사가 너무 잘된 것 같습니다. “몸뚱이는 두서너 아름이나 되지만 높이는 45척이 못되
“며느리는 문서 없는 종이다.” 라는 말에서도 나타나듯이 유교 가부장주의 아래에서의 여성들의 삶은 매우 힘들었다. 오늘날도 한국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지적할 때는 큰 고민 없이 그 원인을 유교 전통으로 돌리곤 한다. 더 나아가서 여성들의 삶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많은
세종의 휘(諱)는 도요, 자(字)는 원정(元正)으로 1497년(태조 6) 4월 10일(양력 5월 15일)에 한성부 북부 준수방(俊秀坊)에서 이방원(李芳遠)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本貫)은 전주이다.
아버지 이방원(1367-1422)는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와 그의 향처(鄕妻)인 신의왕후(神懿王后) 한(韓)씨의 다섯 째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