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기청자
도자기발전사적견지에서 보면 10세기는 선행한 삼국과 발해와 후기신라 때에 발전되어 온 록유나 황갈유 등 연유계통의 도기들과 회유를 이용한 도기나 자기를 더욱 발전시켜 고려의 특유한 자기를 만들어 낸 시기였다. 고려초에는 이미 많은 지역에서 청자기를 만들어내게 되었으며,
강진과 해남이다. 이곳은 작가가 여덟 번을 다녀온 곳이라고 한다. 시선을 별로 받지 않는 곳,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조용한 시골이라고한다.
그러나 월충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
강진과 전북 부안이 고려청자의 최대 제작지로 자리 잡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중국 도자 양식을 따른 청자는 왕실이나 귀족들에 의해 애용되었다.
고요한 연못을 들여다보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비색 청자, 세계 도자기 역사상 최초로 상감 기법을 도자기에 응용하여 만든 상감청자, 다소
강진과 전북 부안은 청자의 주산지로 유명합니다. 특히 부안에서는
청자뿐 아니라 세련된 고려백자도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이 두가마에서 생산된 청자는 양질(良質)
청자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귀족과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입니다.
양질 청자는 정선된 바탕흙에 비취색의유약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홍사와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그리고 달마산 미황사와 땅 끝에 이르는 이 답사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 이번지라고 명명하였다. 사실 나의 표현에서 지역적 편애라는 혐의를 피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남도답사 일번지가 아니라 남한답사 일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