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적 복지 정책에서조차 복지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으며, 선별주의적 복지정책은 말할 것도 없이 수요에 턱없이 부족한 공급으로 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복지체계는 매우 제한적이고 선별적이며, 그 결과 많은 노동자와 빈민 등 여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복지
생명력을 가지고 자신(自身)을 증식(增殖)시켜 나가고 있다. 오늘날 정보화의 대표주자인 인터넷만 예로 들어도 이 이야기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된다.
30년 전 미 국방부의 실험으로 시작된 인터넷(Internet)은 1984년 그 울타리를 벗어났다. 이후 PC 붐을 타고 덩쿨처럼 뻗어나가 매년 2배 정도씩 성장,
주의의 “아버지”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이 사실인 반면에, 그는 또한 칼 바르트와 관련이 된 변증신학의 영적 창시자로 간주될 수도 있다. 초기의 바르트 신학의 지배적인 모티프들은 키에르케고르를 제쳐두고 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제임스 C. 리빙스톤, “현대 기독교 사상사(下)", 김귀탁 역, (서울
개혁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접근하면서 나만 이 시대의 거룩하고 깨끗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다. 나 또한 한국 교회의 성도의 한사람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느끼고, 한 사람의 신학생으로써 신앙생활과
생명의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서구의 철학과 신학의 잘못된 생명관이 미치는 영향은 모든 분야에서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자연에 속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인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세워 하나님의 "샬롬"( )이 넘치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