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黑龍江) 하류에 누르간도사[奴兒干道司]를, 백두산 북쪽에 건주위(建州衛)를 두어 여진부족을 통할하고, 타타르 해협에서부터 남만주에 이르는 땅을 지배하였다. 하얼빈 일대에서 반목, 반수렵으로 생활하던 건주위 여진족이 남으로 내려와 고려후기에는 백두산 동북 쪽, 간도지방에
1) 선조시기
누르하치는 선조 22년인 1589년에 건주삼위 전체를 통일하였으며, 1591년에는 두만강 유역의 여진인 일부를 복속시켰다. 이때 조선의 번호였던 여진인의 상당수가 건주여진에 속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중, 건주위 여진인들이 산삼을 캐러 조선의 영내에 들어왔다가 죽는 사건이 생겼다. 이때
건주위의 한 추장인 누르하치였다. 그는 탁월한 군사적, 조직적 재능을 가지고 여진족 사회를 통합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특히 조선과 명이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여진족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세력을 크게 확장하였다. 이윽고 1616년(광해군 8)에는 후금을 세우고 명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건주위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가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하였다. 계속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후금은 명에 대하여 전쟁을 포고하였고, 이에 명은 후금을 공격하는 한편 조선에 원군을 요청하였다. 당시 후금은 떠오르는 세력이었고 명은 이미 국력이 기울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
건주위(建州衛)를 두었다.
그 뒤로 많은 위소(衛所)를 두어 여진부족을 통할하고, 타타르해협에서부터 남만주에 이르는 땅을 지배하였다. 몽골은 원(元)나라가 멸망한 뒤 분열상태에 있었으나 영락 초년 동부에 타타르, 서북부에 오이라트가 일어나 북변에 압력을 가하였다.
영락제는 1410년 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