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동반가사유상
(1) 설명
옛 신라 영토인 경남 양산에서 출토된 이 반가사유상은 발견 초기에는 신라 불상으로 알려졌으나, 완벽한 조형 감각과 사실적인 세부 표현 등 미술사적인 양식분석을 통하여 백제 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랜 기간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이유로 도금이 모두 벗겨지고 상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 2), 백제는 384년(침류왕 원년), 신라는 528년(법흥왕 15)에 불교를 공인하고 불교 국가가 되었다. 불교는 여러 민족이 지혜를 모아 정착시킨 것으로, 이로 인해 동아시아 전역이 불교문명권이 되었다. 불교는 고대의 자기중심주의를 버리고 중세의 보편주의를 이룩하게 하는데 중
게송을 말했다. “나무는 상사화가 있고 물에는 비목어가 있다. 저승에서 두 유혼이 맑은 도랑에서 합친다.
可憐八斗才, 升合已無餘。
八斗(之)才 [b? d?u c?i] 사람의 다재(多才)함을 칭찬하는 말
가련한 8말의 인재는 1되로 이미 남음이 없다.
?!速脫情緣縛, 隨我凌空虛。
凌空 [l?ngk?ng] ① 하늘 높이
게송(偈頌)으로 구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부록이다. 이러한 내용을 묘사한 것이 바로 어제비장전 판화인데, 이 성암박물관본은 북송본보다도 오래된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에 포함된 것이다.
판화는 제1폭인 개권판화(開卷版畵)에서부터 제4폭의 앞부분이 결실되어 현재는 제2도에서 제5도까지 4폭이
그치지 않고 하층에 접근할 필요성이 있어 <보현시원가>를 지었다고 할 수 있다. <화엄경>에 근거를 두었고, 보현보살의 말을 자세하게 다룬 후 게송(偈頌)으로 다시 풀이했으며, 한문을 모르는 이를 위해 교술적 사뇌가를 지어 널리 유행하는 노래로 교화를 펴고자 하였다.
② <보현시원가>의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