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성된 부족국가체제로써 각부에서 차출되는 강력한 전사들이 핵심이 되어 대외적인 발전을 추진해 나아갔던 것이다. 「동이」라는 「이」자가 스스로 말하다시피 그들은 강력으로써 이름났으며, 한제국을 한 때 찬탈한 왕망도 고구려의 저격부대를 그의 대흉노전에 이용하려고까지 하였던 것이다.
고구려(高句麗)를 비롯한 고조선(古朝鮮), 발해(渤海)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 한국의 정부․학계․언론․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고구려사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 즉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하며 역사를 왜곡해
민족의 한 뿌리인 예맥족을 중국민족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箕子與箕子朝鮮硏究”의 결론은 기자조선이란 중국 최초의 속국이며 여기서 부여, 고구려도 기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사 왜곡을 넘어 현재의 우리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유사시 북한에 대한 개입의 역사적 명분을 쌓
고구려사를 살펴보면 고구려 봉건국가의 성립, 봉건적 제관계의 발전, 중앙집권과 국방력의 강화, 료동화복.령토의 확장, 평양으로의 수도옮김과 수도건설, 고구려 국가의 강성, 수나라 침략자들을 반대한 고구려 인민들의 투쟁, 당나라 침략자들을 반대한 고구려 인민들의 투쟁, 문화. 이렇게 9장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각성과 이에 대한 문제. 그러나 이를 통하여 더욱더 발전하는 계기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세계의 추세는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하나, 사실은 서로간의 종족을 중시하고 이를 중심으로 역사가 서술되고 있습니다. 가도한 민족주의의 발로가 아닌, 역사의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고 우리